[논점] 반대하면 무례하거나 수준 이하?
경멸과 조롱에 막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 막말을 하면 비판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어떤 조롱은 비판하기 힘든 멋진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공로입니다.
공로로 무장하면 평판을 잃지 않으면서 뛰어난 입틀막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2004년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논평을 냈습니다. 제목이 「김대환장관은 함부로 노동운동을 말할 자격이 없다」였습니다.
김대환 당시 노동부 장관이 1987년 민주화를 노동운동만의 성취로 보는 건 착각이라고 한 데 대한 반박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을 다투는 논쟁입니다. 노동운동의 기여가 실제로 어느 정도였느냐를 두고 양쪽이 다른 말을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논평이 다른 데로 갑니다.
“일개 학자출신의 장관이 함부로 폄하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문장이 나옵니다.
“특히 대중운동에 대해 타기하기전에 우선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돌아보라.”
22년 뒤, 질문이 사라집니다
2026년 6월 26일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민주당의 상황을 자가 면역 질환에 빗대면서 말을 이어갑니다.
“정치비평 영역에 철거 전문 비평가를 투입했다.”
“그들만의 힘으로 철거가 버거우니 용역을 썼다. 용역 평론가다.”
“그 중엔 지적 책임성을 적용하기 어려운 수준의 촉법 평론가도 있다.”

한 연설 안에서 세 칸이 올라갑니다. 비평가에서 용역으로, 용역에서 촉법으로요.
촉법소년은 형사처벌을 받는 연령에 이르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법률 용어입니다. 거기에 평론가를 붙이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같은 방송에서 그는 대통령실 명절 선물 언박싱 영상을 올린 청년 평론가를 두고 너무 천하고 상스럽다고 했습니다. 국민일보는 그 대상을 2001년생 정민철 민주당 정책위부의장으로 특정했습니다.
위아래 붙은 목록이 그거야!
그 자리에서 자격이 보증됩니다
같은 방송에서 김어준 씨가 유시민을 두둔하며 말했습니다.
“요새 젊은 애들이 잭나이프 들고 나와서 ‘너 유시민이야 (푹푹)’ 하고 있지. 저는 그런 광경을 보는 것 자체가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저들은 유시민이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알고 있는 건가. 유시민이 탄생하기까지는 40년이 넘게 걸렸어요.”
유시민이 청년 평론가의 자격을 묻고, 김어준이 유시민의 자격을 보증합니다.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Fallacy of Appeal to Authority)
영국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가 400년 전에 적어둔 겁니다.
『인간지성론』 제4권 제17장 19절에서 네 가지 논법을 듭니다.
“사람들이 남과 논할 때 상대의 동의를 얻어내려고, 아니면 적어도 압도해서 반론을 침묵시키려고 보통 쓰는 네 가지 논법”
그중 첫째가 이겁니다.
학식이나 명성, 지위, 권력으로 이름을 얻은 사람들의 견해를 끌어오는 것. 그리고 그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건방지다고 모는 것.
로크가 붙인 이름이 argumentum ad verecundiam입니다. verecundia는 수치심이라는 뜻입니다. 상대를 부끄럽게 만드는 논법이라는 거죠.
로크는 단 하나의 논법만이 지식을 실제로 전진시킨다고 적었습니다.
argumentum ad judicium, 사안 자체의 근거에서 나오는 논증, 지식이나 개연성의 토대에서 증명하는 논법입니다.
권위를 근거로 드는 게 늘 잘못은 아닙니다. 의사의 소견을 들어 말하는 건 정당하니까요.
문제가 되는 건 두 경우입니다. 그 분야의 권위가 아닐 때, 그리고 권위를 들어 반론 자체를 막을 때요. 로크가 지적한 것도 두 번째였습니다.
유시민이 여기까지 오는 데 40년이 걸렸다는 말은 그의 경력을 설명합니다. 청년 평론가가 제기한 비판이 틀렸다는 결론은 거기서 나오지 않습니다.
민주노총의 논평도 같습니다.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가 정확한지를 따지는 대신, 평가하는 사람이 충분히 훌륭한지를 따졌습니다.
꽤 고질적입니다
공로를 쫓는 일은 비판할 때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올해 8월 1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누가 노무현의 적통인가가 쟁점이 됐습니다. 정청래 후보가 노사모를 언급하며 지지를 호소하자 김민석 후보 측이 그가 노사모 핵심 인사가 아니었다고 했고, 최민희 최고위원 후보는 정 후보를 진짜 노사모라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노사모의 마지막 대표였던 ‘달바라기’ 씨가 성명을 냈습니다.
“노사모의 정통성은 단 1%도 존재하지 않는다”
적통을 다투는 싸움에 원래 그 단체의 마지막 대표가 나와서, 양쪽 다 아니라고 한 겁니다.
지난해 당대표 선거에도 찐명 경쟁이 있었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진박과 진진박이 있었습니다.
누가 더 나은 대안을 내놓는가보다 누가 한 번도 배신하지 않았는가를 따지면, 잘못을 바로잡자는 비판까지 충성심 부족의 증거가 됩니다.
‘나는 이 지도자의 정책과 가치를 계승하겠다’는 말에는 검증할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정책을 이어받고, 무엇을 수정하고, 새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 물어야 합니다.
지도자와 가까웠다는 사실만으로 정책이 옳아지지는 않습니다.
여쭙겠습니다
지금 신뢰하는 논객이나 정치인을 한 명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사람을 믿는 이유는 어디에서 옵니까.
그 사람이 과거에 한 일입니까, 그 사람이 내놓은 주장의 근거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누군가의 적통이기 때문입니까.
기다리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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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종류의 의견이 있는데, 뭘로 쓸래?
고급진 의견
의견은 짧게. 근거는 제대로.
저렴한 의견
편하게 써. 대신 이것만 확인해줘.
위의 글을 읽어 보고 쓰는 거야. 읽어봤지?
누군가를 말로 패주고 싶다면 잘못 왔어. 욕과 조롱은 금지. OK?
아, 그리고 유머감각을 잊지마!
아직 아무도 안 썼어. 첫 번째가 되어줄래?
불러오는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