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이 답하지 않은 질문들

대법관 두 자리가 반년 넘게 비어 있습니다.
지난 3월 노태악 대법관이 퇴임했습니다. 후임이 아직 없습니다.
그 사이 벌어진 일을 순서대로 보면 이렇습니다.
8월 18일, 대법원장이 청와대에 가지 않고 서면으로 대법관 두 명을 제청했습니다. 만나서 합의한 뒤 서면을 보내는 게 26년간의 관행이었는데, 이번엔 일정 조율조차 안 됐습니다.
8월 28일, 청와대가 손봉기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내지 않기로 하고 다시 제청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9월 22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거부했습니다. 재제청 요청 문서에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요청 25일 만이었고,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다음 날이었습니다.
위아래 붙은 목록이 그거야!
그리고 말이 쏟아졌습니다
청와대가 같은 날 반박했습니다.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해야 한다는 건 선출된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요.
민주당은 그날 규탄 논평을 다섯 건 냈습니다. 쿠데타적 행태, 즉각 사퇴하라. 법사위원장은 기자들에게 “나는 탄핵이라고 몇 번씩 말했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제청권을 침해했다며 이재명 대통령 탄핵을 거론했습니다.
양쪽이 서로를 탄핵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헌법은 말이 없습니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 104조 2항입니다.
제청 전에 만날지, 제청을 거부할 수 있는지, 거부당하면 다시 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안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싸움의 거의 전부가 헌법이 침묵한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퀘스천스는 여기서 다섯 가지를 물어보려 합니다.
하나. 셋은 대등합니까
조 대법원장이 9월 17일 한 국제회의 개회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법부와 입법부, 행정부 사이의 협력도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고요.
삼권분립 이야기입니다.
그럼 대법원장은 대통령과 대등합니까.
헌법재판소는 1998년에 사법부를 선거로 구성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가 동의하게 한 겁니다. 민주적 정당성이 약한 건 결함이 아니라 설계예요.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습니다. 선출되지 않은 그 자리가 한국에서 가장 큰 인사권을 가지고 있거든요.
(→ 논점: 삼권분립 — 대법원장, 대통령, 국회의장은 대등한 위치인가?)
둘. 사법부 독립은 누구의 독립입니까
조 대법원장이 국회 출석을 거부하며 든 근거가 헌법 103조였습니다. 사법 독립에 반한다는 것.
그런데 2018년에 같은 조문이 정반대로 쓰였습니다. 사법농단 때 침해당했다고 지목된 건 대법원장이 아니라 개별 판사들이었거든요.
조문을 펴보면 주어가 “법관”입니다. 대법원장이 아니라요.
법원장이 판사들의 동향을 봉투에 담아 올리고, 법원행정처가 문건을 만들고, 그게 다시 내려와 평정에 반영됐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그 부분에서 1심과 2심 모두 무죄를 받았습니다. 인사권 범위 안이라는 이유였고요.
(→ 논점: 사법부 독립 — 법이 보호하는 건 법관의 권리인가, 대법원장의 권리인가?)
셋. 헌법에 없으면 안 지켜도 됩니까
대법원장이 든 근거가 “헌법적 근거가 없다”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되돌린 법원장 추천제도 헌법에 없습니다. 26년간 만나서 합의해온 관행도 헌법에 없고요.
의무는 없습니다. 그런데 금지도 없습니다.
(→ 논점: 관행에 헌법적 근거가 없으면 안 지도 될까?)
넷. ‘자제(forbearance )’는 왜 무너집니까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쓴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두 개의 가드레일 중 하나로 ‘제도적 자제’라는 개념을 제시했죠. 법적으로 할 수 있어도 끝까지 하지 않는 것.
그런데 자제가 자꾸 무너집니다. 민주주의는 쿠데타로 인해 무너지는 게 아닙니다. 자제가 무너지는 알고리즘은 지면 끝장이라는 절박함과 혼자만 지키면 손해라는 계산 때문입니다.
(→ Perspective: forbearance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다섯. 사법 독립의 가장 큰 위협은 누구입니까
2003년, 타이완 사법원이 미국에서 한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로저 K. 워런. 새크라멘토에서 20년간 판사로 일하고 미국 주법원센터 회장이 된 사람입니다.
그가 동료 판사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판사들은 사법 독립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걸 종종 잊는다고요.
그리고 사법 독립에 대한 위협을 길게 나열한 뒤,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아마도 사법 독립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우리 자신이다.”
(→ Perspective: “사법 독립은 전면적 독립이 아니라 제한된 독립이다”)
그리고 빠진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이 논쟁 어디에도 재판 받는 사람 얘기가 없습니다.
헌법 27조 3항은 모든 국민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법관 두 자리가 반년 넘게 비어 있어요.
그 공백의 비용은 누가 치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