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점] 관행에 헌법적 근거가 없으면 안 지켜도 될까?
9월 22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이유가 이랬습니다. 8월 28일자 재제청 요구 문서에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는 것.
헌법적 근거. 이 말이 이 논쟁의 열쇠입니다.
먼저 이 사건에 헌법적 근거가 있는 걸 세어봅시다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한다. 헌법 104조 2항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한다. 같은 조항에 있습니다.
국회가 동의한다. 이것도 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제청 전에 만나는 것. 없습니다.
대통령이 제청을 거부하는 것. 없습니다.
거부당한 뒤 다시 제청하는 것. 없습니다.
그 요구를 거부하는 것. 역시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싸움의 거의 전부가 헌법에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위아래 붙은 목록이 그거야!
그럼 왜 26년간 만나서 합의했나
법원행정처장의 설명이 이랬습니다. “대통령과 대법원장, 두 분이 만나서 합의한 이후에 서면으로 보냅니다.”
법에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충돌이 없었습니다. 만나서 조율했으니 제청된 사람이 거부당할 일도 없었던 거죠.
관행이 헌법의 빈칸을 메워왔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장은 다른 관행도 깼습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있었습니다. 각 법원 판사들이 투표로 후보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방식이요. 사법농단 이후 도입된 제도였습니다. 그전엔 대법원장이 그냥 임명했었습니다.
2024년 11월, 법원행정처장이 내부망에 글을 올려 사실상 폐지했습니다. 인기투표로 전락했다는 이유였고요. 이제 다시 대법원장이 혼자 임명합니다.
논리는 일관됩니다. 헌법에 없으면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
다만 방향이 한쪽입니다
헌법에 없다는 이유로 안 따랐습니다. 청와대가 다시 제청하라고 한 것도, 26년간 만나서 합의해온 것도, 판사들이 법원장 후보를 뽑던 제도도요.
헌법에 있다는 이유로 고유한 권리라 주장합니다. 대법관을 제청할 권한요.
모두 대법원장의 권리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최대한으로 해석했습니다.
국회 불출석 얘기도 한번 살펴볼까요. 국회법을 펴봅시다.
조 대법원장이 2025년 5월과 9월 청문회에 불출석하며 든 근거 중 하나가 국회법 121조였습니다. 대법원장에게 국회 출석·답변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
맞습니다. 1항부터 4항까지는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정부위원 대상이고, 헌법 62조 2항에 따라 출석·답변 의무가 있습니다. 대법원장은 거기 없습니다.
그런데 5항이 있습니다.
“본회의나 위원회는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 질문하기 위하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감사원장 또는 그 대리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대법원장이 이름으로 적혀 있습니다. 2018년 전문개정된 조항이고요.
즉 의무는 없지만 국회의 요구권은 헌법이 인정했습니다. 법이 이 상황을 예정해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는 그 대리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인이 안 갈 거면 법원행정처장을 보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고요.
이번엔 그것도 안 했습니다.
세 층위를 나눠봅시다
나가야 한다. 국회법에 그런 의무는 없습니다.
나가면 안 된다. 그런 금지도 없습니다.
나갈지 말지 정할 수 있다. 이게 실제 상태입니다. 즉, 대법원장 개인의 선택일 뿐입니다.
그러니 안 나가도 되는 것이지, 나가면 안 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조 대법원장은 여기에 헌법 103조와 법원조직법 65조를 덧붙였습니다. 재판 합의 과정을 증언하는 건 사법 독립에 반하고 비공개 규정에도 어긋난다는 것.
이건 금지 논리입니다. 그리고 청문회 안건에 전원합의체 회부 사유가 들어 있었으니 그 부분엔 근거가 있습니다.
다만 대법관 제청은 인사입니다. 심판도 아니고 합의도 아니고요.
그리고 형식 문제도 있습니다
여당 법사위원들이 지적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사유서는 출석 의무가 있는 사람이 불출석할 때 내는 형식인데, 조 대법원장은 “의견서”라는 형식을 썼습니다. 두 번 다요.
사유서를 내면 출석 의무를 인정하는 셈이 되니까요.
그러니 형식 하나에도 같은 논리가 관철돼 있습니다. 나는 나갈 의무가 없다는 것. 법은 나가지 않을 권리도 보장해주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여당에도 돌아갑니다
지금 여당이 밀고 있는 게 법원행정처 폐지입니다.
법원행정처도 헌법에 없습니다. 법원조직법에 있는 기구고요. 그러니 법을 고치면 없앨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법관 증원도 거론됩니다. 대법관 정원은 헌법 사항이 아니라 법률 사항이니 국회 과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헌법에 없으면 손댈 수 있다는 논리. 양쪽이 같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다만 시점이 다릅니다. 사법농단 때 나왔던 개혁안이 지금은 권력다툼 국면에서 다시 꺼내졌으니까요.
같은 제안인데 다르게 읽히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여쭙습니다.
헌법에 없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지킬 의무가 없다는 뜻입니까. 경우에 따라 유연할 여지를 두라는 뜻입니까.
지금 이 싸움의 거의 전부가 헌법이 아무 말도 안 한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빈칸을 26년간 관행이 메워왔습니다. 그 관행이 사라지면, 그 자리엔 무엇이 들어옵니까.
헌법의 빈칸은 다퉈서 다퉈서 정합니까, 협의해서 채웁니까. 헌법이 말하지 않는다면, ‘헌법의 정신’은 어떻게 하라고 말합니까.
기다리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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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종류의 의견이 있는데, 뭘로 쓸래?
고급진 의견
의견은 짧게. 근거는 제대로.
저렴한 의견
편하게 써. 대신 이것만 확인해줘.
위의 글을 읽어 보고 쓰는 거야. 읽어봤지?
누군가를 말로 패주고 싶다면 잘못 왔어. 욕과 조롱은 금지. OK?
아, 그리고 유머감각을 잊지마!
아직 아무도 안 썼어. 첫 번째가 되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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