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논란이 묻는 심판의 조건

영화 한 편을 두고 지난 2주 동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109명이 외국 영화제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10월 6일, 국민의힘 의원 전원 명의로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 보낸 서한입니다. 「암살자(들)」을 개막작으로 고른 결정을 재고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구미의 멀티플렉스 한 곳이 상영을 멈췄습니다. 버거킹에서 주연배우 유해진이 나온 광고가 내려갔고, 본사 앞에서 시위가 열렸습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리뷰에는 악플이 수천 개 달렸습니다.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을 다룹니다. 그날 육영수 여사가 숨졌습니다.
그런데 이 2주 동안 눈에 띈 건 편지만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의 비판에 대한 문제
9월 30일, 주진우 의원이 자기 유튜브 채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안 봤거든요. 보기도 싫어. 토할 것 같아서.”
사흘 전 페이스북에 이 영화를 패륜적 범죄라고 쓴 사람입니다.
그 뒤로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구미 CGV가 상영을 멈췄습니다. 버거킹에서 주연배우 유해진이 나온 광고가 내려가고, 본사 앞에서 시위가 열렸습니다. 평론가 이동진의 리뷰에는 악플이 수천 개 달렸습니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는 편지가 두 통 갔고요.
영화를 보지 않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예고편과 줄거리와 인터뷰만으로 방향을 알 수 있는 작품이 있긴 합니다. 이 경우에도 해당될까요?
(→ [논점] 보지 않은 영화를 비판하는 것이 가능한가?)
둘째. 같은 일이 18년 전 일본에서 있었다는 것
중국인 감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찍은 다큐멘터리가 있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시사회를 요구해 80명이 모여 봤고, 예술문화진흥기금 750만 엔이 문제가 됐고, 영화관 다섯 곳이 상영을 취소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금과 같습니다.
끝이 달랐습니다.
4월 2일 하루에 네 개 신문이 사설을 썼습니다. 아사히와 마이니치뿐 아니라 요미우리와 산케이도요. 이틀 뒤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이 담화를 냈고, 우익 단체 고문이 카메라 앞에서 상영을 옹호했습니다. 영화는 5월 3일 시부야에서 개봉했고 첫 회가 매진됐습니다. 전국 스무 곳 넘는 극장으로 늘었고요.
한국은 어떤가요. 9월 23일부터 10월 7일까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사설에 이 영화는 없습니다.
(→ 일본에서 영화 「야스쿠니」 논란은 어떻게 끝났나)
셋째. 다섯 달 전에 반대쪽이 같은 방법을 썼다는 것
배우 정민찬이 스타벅스 매장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올렸습니다. 스타벅스가 5·18 기념일 마케팅으로 비판받던 때였고요. 이틀 만에 뮤지컬 「디아길레프」 나진스키 역에서 내려왔습니다. 그사이 두 번 사과했습니다.
그때 압력을 넣은 쪽과 지금 압력을 넣는 쪽은 다릅니다. 방법은 같습니다. 광고를 내리게 하고, 배역에서 내려오게 하고, 상영을 멈추게 합니다.
이게 같은 일인지, 같아 보이지만 다른 일인지를 따졌습니다.
(→ [논점] ‘스타벅스 정민찬’과 ‘암살자 유해진’의 대칭성, 성립하나?)
넷째. 표현의 자유란 옹호 논리가 어디까지 통하는가
이번 논란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먼저 쓴 사람은 주진우 의원입니다. 자기 유튜브 라이브에 달린 댓글을 두고 그렇게 말했죠.
표현할 권리가 있으면 비판받지 않을 권리도 생기는 건 아닙니다. 미국에서 이 둘을 가장 분명하게 갈라놓은 판례들이 있고, 자기 발언 때문에 14억 달러를 물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 나라는 혐오 표현에 예외를 두지 않는 대신, 틀린 말에 값을 아주 비싸게 매깁니다.
다섯째. 틀릴 자유가 없으면 자유가 아니라는 것
제러미 월드론은 1981년에 이상한 제목의 논문을 썼습니다. 사람에게는 잘못할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옳은 선택만 할 수 있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죠. 그런데 그 말을 받아들이면 바로 다음 질문이 옵니다. 틀렸으니 막아도 되는 겁니까.
(→ [Perspective] 잘못할 권리(A Right to Do Wrong))
그래서 기록과 하나씩 맞춰봤습니다
영화가 다 맞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기록 밖인지 나누려는 거예요.
나누고 보니 세 종류가 나옵니다. 기록이 영화와 어긋나는 것, 기록이 영화 쪽을 받치는 것, 그리고 양쪽 다 기록이 없는 것.
받치는 쪽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화가 꺼낸 의문들은 2005년 상반기에 이미 지상파와 주요 신문에 다 나와 있었습니다. 그때는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였고요.
(→ 언론이 지적한 「암살자(들)」 역사 왜곡 포인트와 팩트)
퀘스천스는 여기서 좀 다른 걸 묻고 싶습니다.
보지 않은 것을 막아달라고 외국에 보내는 편지는 무엇인지. 광고를 내리게 하고 배역에서 내리게 하는 방법을 쓸 수 있는 쪽과 쓸 수 없는 쪽을 가르는 기준이 있는지. 그리고 18년 전 일본에서 네 개 신문이 같은 날 사설을 쓸 수 있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한국은 표현의 자유를 헌법에 적어둔 나라입니다. 그 조항을 가장 크게 외치는 쪽이 지금 영화 한 편의 상영을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반대 진영도 다섯 달 전에 같은 방법을 썼고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