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성향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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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한 심리학자가 이름을 붙였습니다.

엘제 프렌켈브룬스비크(Else Frenkel-Brunswik)가 Journal of Personality 18권에 쓴 논문의 제목이 「정서적·지각적 성격 변인으로서의 모호함 불관용」입니다. intolerance of ambiguity, 그러니까 모호함을 견디지 못함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가 본 건 아이들이었습니다.

편견 점수가 높게 나온 아이들에게 뭔지 분명하지 않은 그림을 보여줬더니, 반응하는 데 더 오래 걸렸습니다. 그리고 한번 내놓은 답을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걸렸다는 게 신중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애매한 상태에 머무는 일 자체가 힘들었던 겁니다.

1962년, 정의가 붙습니다

스탠리 버드너(Stanley Budner)가 같은 학술지 30권에 쓴 글에서 이 개념에 정의를 붙입니다.

모호함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모호함을 위협으로 해석하는 경향이다.

반대로 모호함을 견딘다는 건 그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고요.

위협이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불편이 아닙니다.

아직 모르는 상태가 불편한 것과, 아직 모르는 상태가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건 다른 일입니다. 뒤쪽이면 빨리 끝내는 게 아니라 당장 끝내야 합니다.

이런 성향이 어떤 태도를 부를까요.

버드너가 만든 척도는 여러 태도와 상관을 보였습니다. 권위주의, 관습성, 독단주의, 그리고 검열에 대한 태도요. 다만 상관이지 인과가 아니고 수치도 크지 않습니다. 그 정도 경향이 있다는 것까지입니다.

엘제 프렌켈브룬스비크의 실험에선 인종적 편견이 강한 집단에서 모호함을 더 견디지 못했습니다.

프렌켈브룬스비크는 논문 115쪽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그러한 해법(흑백식 해법)을 유지하려면, 그 해법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현실의 측면들을 차단해야 한다.”

어디 가서 썰 풀기 좋은 글[논점] 거침없는 무례함 — 전략인가 성격인가10월 12일 오전 8시쯤입니다. 스레드에 한 이용자가 글을 올렸습니다. "눈눈 이이 싸워야 함. 주진우 의원님 호랑이가 되셔야 합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거기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재 명을 끊을 때." 대통령의 이름을 띄어 쓰면 명을 끊는다로 읽힙니다. ...more

그런데 이건 꼭 성격 문제만은 아닙니다

여기가 이 꼭지에서 제일 말씀드리고 싶은 대목입니다.

아리 크루글란스키(Arie Kruglanski)와 도나 웹스터(Donna Webster)가 1996년에 정리한 종결 욕구(need for closure) 연구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확정된 지식을 갖고 싶은 욕구를 말합니다.

종결 욕구는 성향이기도 하지만, 상황이 불러내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심해집니다.

같은 사람도 때에 따라 다른데 논문이 꼽은 상황이 이렇습니다.

급할 때. 시끄러울 때. 피곤할 때. 지루할 때.

그리고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옆에서 누가 빨리 결론을 내라고 할 때. 모르겠다고 말하면 안 되는 자리에 있을 때.

가라앉히는 건 둘입니다.

하나는 틀리면 크게 손해 보는 상황입니다. 값비싼 실수에 대한 걱정이 계속 마음을 갉아먹으면, 서둘러 결론을 내려는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또 하나, 나중에 누가 왜 그렇게 판단했냐고 물어볼 것 같은 상황에서도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집단에서는 다른 일이 생깁니다

같은 논문에 집단 수준의 결과도 있습니다.

종결 욕구가 높아지면 두 가지가 나타납니다.

하나는 의견 이탈자에 대한 배척입니다. 논문의 표현으로는 이견자에게 부정적으로 기울게 된다는 거고요.

다른 하나는 획일성 압력입니다. 종결을 유지하려면 도전받지 않을 합의된 의견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니까 모호함을 못 견디는 사람에게 회색인 사람은 불편한 게 아닙니다. 위협입니다.

이 이슈의 두 번째 논점에서 다룬 일이 여기서 설명됩니다. 망설인 사람이 왜 상대 진영보다 먼저 정리되는지요.

기다리는 일에 관한 겁니다

모호함을 대하는 태도에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모르는 상태를 지켜보고, 더 묻고, 자료를 더 모으고, 선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일.

그게 안 되면 먼저 들어온 단서로 결론을 만들고 그 결론을 지키게 됩니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입니다. 조건이 같으면 누구에게나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꼭지는 누굴 탓하자고 쓴 게 아닙니다. 조건을 알아두면 자기 차례가 왔을 때 한 박자를 벌 수 있어서입니다.

여쭙겠습니다

누군가 스스로를 중도라고 말할 때, 그건 위장에 불과하며 실은 “반대편” 사람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우리 편”에서 나오지 않는 새로운 담론이 나왔을 때 위협이라고 느끼십니까.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한 인내심, ‘견디는 힘’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충분한 근거를 원해서 결론을 요구하는 걸까요, 아니면 결론이 없는 상태가 불편해서 요구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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