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점] 거침없는 무례함 — 전략인가 성격인가
10월 12일 오전 8시쯤입니다.
스레드에 한 이용자가 글을 올렸습니다.
“눈눈 이이 싸워야 함. 주진우 의원님 호랑이가 되셔야 합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거기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재 명을 끊을 때.”
대통령의 이름을 띄어 쓰면 명을 끊는다로 읽힙니다. 이주희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대통령의 이름을 비틀어 목숨을 끊는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경악스러운 막말이라고 했습니다.
주 의원은 페이스북에 해명을 올렸습니다. 억까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재명 황제골프로 정권의 운명이 다했으니 이재명을 탄핵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격일까요, 전략일까요
이 사례가 중요한 건 저 말의 수신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호랑이가 되셔야 합니다.”라는 주문이 있었고, 주 의원이 그 주문에 답했습니다.
주 의원이 이재명 대통령 면전에서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성격 문제라면 가능합니다.
이 댓글이 향한 곳에 이재명 대통령은 없습니다. 생각이 다른 유권자도 수신자는 아닙니다. 탄핵해야 한다는 뜻이었다면 그 뜻을 전달해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설득하는 문장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납득시킬 생각이 없는 말이라는 게 더 정확합니다.
위아래 붙은 목록이 그거야!
좌우가 따로 없습니다
반대 방향 사례는 더 까다롭습니다.
9월 16일,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제목이 ‘악의 평범성과 중수청장 후보 김지용, 기억이 우리를 구원한다’였습니다.
김지용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글이었고, 근거가 여럿 있었습니다.
2020년 채널A 사건 때 정진웅 검사를 독직폭행으로 기소하는 데 관여했다는 것. 정 검사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한동훈 전 장관의 휴대전화 포렌식이 무산되고 무혐의로 끝난 과정에 책임이 있다는 것.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직무배제에 반발한 검사장급 간부 공동성명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그런데 같은 글에 이 문장이 있었습니다.
“헝가리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내몰아 죽게 하고도 … (아돌프) 아이히만을 연상하게 한다.”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유대인 이송을 실무로 집행한 나치 장교입니다. 재판에서 자신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추 지사는 김 후보를 “그냥 ‘밀정’이라고 본다”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다음 날 남은 건 하나였습니다
9월 17일 기사 제목들에는 ‘아이히만’이 들어가 있습니다.
정진웅 검사 기소도, 포렌식도, 공동성명도 제목에 없습니다.
한 달 뒤인 10월 14일 인사청문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이 나치 비유를 물었고, 김 후보자가 일부 표현이 모욕적이라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추 지사는 지명이 왜 부당한지를 한 달에 걸쳐 쌓아왔지만, 비유 하나만 남았습니다.
이게 선을 넘을 때 치르는 대가입니다. 추 지사가 김 후보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던 여러 근거는 사라지고 거친 말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계속합니다
중요한 건 이게 손해가 아니란 겁니다. 그래서 계속합니다.
주장의 목적이 설득이라면 손해입니다. 그런데 목적이 다르면 오히려 성능이 좋습니다. 바로 자기 편에게 기억되려는 목적입니다.
이걸 실제로 측정한 연구가 있습니다.
로셀라 레가(Rossella Rega)와 리타 마르케티(Rita Marchetti)가 2021년 《The Communication Review》 24권 2호에 쓴 논문입니다. 제목이 「현대 정치에서 무례함의 전략적 사용」(The strategic use of incivility in contemporary politics)이고, 부제가 2018년 이탈리아 총선의 페이스북 사례입니다.
두 사람은 그 총선 때 정당 지도자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거기 달린 시민들의 반응을 분석했습니다.
결과가 둘입니다.
하나. 지도자가 무례하게 쓴 글은 온라인 참여를 더 많이 끌어냈습니다. 그만큼 더 멀리 퍼졌고요.
둘. 그 글 아래 달린 댓글도 더 무례해졌습니다. 글이 일으킨 감정적 흥분이 사용자들의 적대적인 행동을 부추겼고, 토론의 질은 떨어졌습니다.
질이 떨어지는 말들이 오갔지만 말한 사람의 목적에서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저자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진영을 가르는 쟁점과 결합한 무례함이 유권자를 동원하고 정치적 소속감을 강화하는 전략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래도 되는 걸까요
여기서 표현의 자유 얘기가 나옵니다.
주 의원도 추 지사도 저 말 때문에 처벌받지는 않을 겁니다. 표현의 자유일 수 있습니다. 저런 말을 했다고 나라가 사람을 가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처벌받지 않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은 다른 질문입니다.
제러미 월드론(Jeremy Waldron)이 쓴 표현이 이 자리에 맞습니다. 잘못할 권리(a right to do wrong)요. 어떤 행동을 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그 행동이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권리는 남이 막지 못한다는 뜻이지 그 선택이 좋다는 보증이 아닙니다.
답은 이미 다 압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에 저래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물어보면 다들 압니다. 선을 넘으면 상대도 넘는다는 것, 그러면 다음엔 더 넘어야 한다는 것, 그 끝이 좋을 리 없다는 것이요.
그런데 아무도 안 지킵니다.
이유는 품성이 아니라 구조에 있습니다.
올라가는 건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내려오는 건 혼자 못 합니다.
먼저 내려온 사람은 약해 보이거든요. 그리고 주문한 쪽이 바로 알아챕니다.
이 글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호랑이가 되셔야 합니다, 라는 주문이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고양이가 되면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사람에게 갑니다.
이탈리아 연구가 본 것도 결국 그 지점입니다. 거친 글 아래 거친 댓글이 달렸습니다. 수위가 올라가는 건 그렇게 쉽습니다.
멈추려면 누군가 먼저 손해를 봐야 하는데, 그 손해를 감수할 이유가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여쭙겠습니다
무례함을 전략으로 사용하는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계십니까.
“우리 편”의 조롱과 모욕도 “반대 편”의 조롱과 모욕과 같은 수준으로 비판하고 계십니까.
이 병증을 없애려면 “우리 편”부터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우리는 타당하므로 마땅히 “반대 편”부터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다리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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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종류의 의견이 있는데, 뭘로 쓸래?
고급진 의견
의견은 짧게. 근거는 제대로.
저렴한 의견
편하게 써. 대신 이것만 확인해줘.
위의 글을 읽어 보고 쓰는 거야. 읽어봤지?
누군가를 말로 패주고 싶다면 잘못 왔어. 욕과 조롱은 금지. OK?
아, 그리고 유머감각을 잊지마!
아직 아무도 안 썼어. 첫 번째가 되어줄래?
불러오는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