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모르거나, 멍청하거나, 나쁘거나”
리 로스(Lee Ross)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사회심리학을 가르친 학자입니다. 사람이 왜 상대를 오해하는지를 평생 연구했고, 중동과 북아일랜드의 분쟁 중재에도 참여했습니다.
그가 앤드루 워드(Andrew Ward)와 함께 1996년에 쓴 글이 순진한 리얼리즘(naive realism, 소박한 실재론이라고도 합니다)을 정리합니다. 『Values and Knowledge』라는 책의 103~135쪽에 실린 「일상에서의 순진한 리얼리즘: 사회적 갈등과 오해에 대한 함의」입니다.
순진한 리얼리즘은 세 가지를 전제로 합니다.
하나. 나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편향 없이 보고 있다.
둘. 그러니 합리적인 사람이 같은 정보를 보면 나와 같은 결론에 이를 것이다.
셋. 그런데도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무지하거나, 비합리적이거나, 편향됐을 것이다.

‘셋’만 남는 게 문제입니다
여기가 중요합니다.
로스와 워드가 말한 셋은 선택지가 아닙니다. 앞의 두 전제를 깔고 나면 자동으로 남는 설명들입니다.
내가 객관적으로 보고 있고, 합리적인 사람이면 나와 같은 결론에 이른다고 전제했으니,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쓸 수 있는 설명이 셋밖에 안 남습니다. 정보를 덜 봤거나,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거나, 다른 동기에 흔들렸거나.
정치에서 이 셋은 더 짧아집니다. 상대는 분명히 셋 중 하나입니다.
모르거나, 멍청하거나, 나쁘거나.
이 세 마디는 로스의 표현이 아니라 퀘스천스가 줄인 겁니다. 로스가 쓴 단어는 무지하거나, 비합리적이거나, 편향됐거나입니다.
같은 사실이 남에게는 편향, 나에게는 통찰
로스가 조이스 에를링거(Joyce Ehrlinger),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와 함께 쓴 글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people view personal connections to an issue as a source of bias in others but enlightenment in the self”
어떤 사안에 개인적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남에게서는 편향의 원인으로 보고 자기에게서는 깨달음의 근거로 본다는 겁니다.
같은 글에 ‘편향 맹점(bias blind spot)’의 정의도 있습니다. 자기 판단은 남의 판단보다 편향에 덜 취약하다는 확신이요.
그리고 이 문장이 있습니다.
“People on both sides are likely to assume that they are being reasonable, candid, and objective”
양쪽 모두 자기가 합리적이고 솔직하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양쪽이 동시에 그렇게 믿습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위아래 붙은 목록이 그거야!
우리는 저쪽을 아는데 저쪽은 우리를 모릅니다
에밀리 프로닌(Emily Pronin)과 켄 사비츠키(Ken Savitsky),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가 로스와 함께 2001년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1권 4호에 쓴 논문이 있습니다. 제목이 「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안다: 비대칭적 통찰의 착각」(You don’t know me, but I know you: The illusion of asymmetric insight)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상대를 아는 정도보다 상대가 자기를 아는 정도가 더 낮다고 믿습니다. 친구에 대해서도, 룸메이트에 대해서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집단 수준에서도 같았습니다. 우리 집단은 저쪽을 잘 아는데 저쪽은 우리를 모른다고 믿습니다.
양쪽이 동시에 그렇게 믿습니다.
지우다 보면 나쁜 사람만 남습니다
왜 이렇게 세상에 경멸과 모욕이 난무하는지 역설적으로 추론해 보겠습니다.
누가 나와 다른 의견을 내면 우선 그가 잘 모른다고 치부할 수 있습니다. 수준이 안 되거나 자격이 없다고 몰아붙이면 이쯤해서 반대 의견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출처를 다 붙이고 나옵니다. 상대는 정보가 부족한 상황, 잘 모르는 상황은 분명 아닙니다.
그럼 비합리적이라고 몰아붙여 봅니다. 그런데 상대가 빼곡한 논리를 들고 나옵니다. 이쯤해서 잠재우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남는 칸이 하나뿐입니다. 나쁜 사람입니다.
즉, 꼼꼼하게 쓸수록 인신공격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인신공격만 남게 됩니다.
희망이 없는 게 아닙니다
마지막이 이 코너에서 제일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2014년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0권 11호에 실린 연구가 있습니다. 메이랍 나시에(Meytal Nasie)와 다니엘 바탈(Daniel Bar-Tal), 루시 플리스킨(Ruthie Pliskin), 에만 나하스(Eman Nahhas), 에란 할페린(Eran Halperin)이 썼습니다.
실험은 간단했습니다. 참가자를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에는 순진한 리얼리즘에 관한 글을 읽히고 다른 쪽에는 리더십 이론에 관한 무관한 글을 읽혔습니다. 그러고 나서 상대 진영의 서사에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쟀습니다.
결과가 뜻밖입니다. 글을 읽고 마음을 움직인 이들이 있었습니다.
전체 효과는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읽은 사람 전부가 열린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움직인 쪽은 놀랍게도 완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세 번 했는데, 우파 성향 참가자들은 글을 읽은 뒤 상대 진영의 서사에 더 열린 태도를 취했습니다. 좌파 성향 참가자들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자기 진영의 서사에 대한 폐쇄성이 높은 쪽만 개방성이 올랐고, 낮은 쪽은 그대로였습니다.
한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폐쇄성이 높은 쪽이 그 편향을 자기 안에서 더 많이 발견했습니다.
표본이 작고 대부분 학생이었고 단기 효과만 측정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방향은 분명합니다. 누군가는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을 돌아본다는 겁니다.
또한 보통 설득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건 중간층인데, 이 연구에서 중간층은 가장 안 움직였습니다.
여쭙겠습니다
반대편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할 때, 가장 최근 것을 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그 반론에서 상대의 논거를 몇 줄이나 다루셨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몇 줄이나 다루셨습니까.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 첫 번째가 되어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