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점] 좌표 찍으면 쏴라 — 명적(鳴鏑)의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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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적은 소리 나는 화살입니다. 화살촉에 구멍을 내 날아갈 때 소리가 나게 만든 것이고, 우리말로는 우는살이라고 합니다. 원래 용도는 신호예요. 여기를 공격하라고 알리는 겁니다.

기원전 209년 무렵, 흉노의 묵돌이 이걸 다른 데 썼습니다.

부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鳴鏑所射而不悉射者,斬之. 내가 명적을 쏜 곳을 다 같이 쏘지 않는 자는 베겠다.

처음에 자기 애마를 쏘았습니다. 따라 쏘지 못한 자들을 베었습니다. 다음에 자기 애첩을 쏘았습니다. 겁을 먹고 못 쏜 자들도 베었습니다. 세 번째로 아버지의 명마를 쏘았습니다. 이번엔 전원이 따라 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버지 두만선우를 쏘았고, 부하들이 일제히 쏘아 그가 죽었습니다.

세 번째부터는 벨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쐈거든요.

묵돌이 훈련한 건 사격술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습관’입니다.

좌표 찍기라는 말을 당사자가 썼습니다

2026년 6월, 민주당의 1인1표제를 두고 생긴 일입니다.

전현희 의원은 1인1표제가 당원주권의 모범을 보였지만 일반 민심과는 어긋난다고 했고, 김남희 의원은 젊은 세대를 포용할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6월 11일 오후, 정청래 당시 대표가 두 사람의 실명이 들어간 기사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1인1표제는 민주주의 그 자체.”
“민주주의는 지켜져야 한다.”

공격하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전 의원이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어젯밤 뜬금없이 1인1표제 당내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당대표의 공개적 좌표 찍기 대상이 돼 밤새 쏟아지는 욕설과 문자 폭탄을 받았다”

지시가 없어도 공개 지목은 신호로 작동합니다.

어디 가서 썰 풀기 좋은 글[논점] 반대하면 무례하거나 수준 이하?경멸과 조롱에 막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 막말을 하면 비판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어떤 조롱은 비판하기 힘든 멋진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공로입니다. 공로로 무장하면 평판을 잃지 않으면서 뛰어난 입틀막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more

번호에서 집까지 일주일

2025년 2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진행하던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휴대전화 번호가 온라인에 돌았습니다.

고교 동창 카페에 올라온 모친상 부고에서 찾아낸 번호였습니다.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와 탄핵 반대 오픈 카카오톡방, X로 퍼졌고, 문자를 보내 사퇴하게 만들자는 글이 뒤따랐습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실제 유포된 문자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처맞아 죽기 싫으면 기각해라.”

연합뉴스가 확인한 게시물에는 통화기록을 올리면서 “전화 받아라. 이 XX 쫄았네”라고 적은 글 있었습니다.

2월 18일에는 지지자들이 그의 자택 앞까지 갔습니다.

주소를 띄워 달라고 했습니다

2025년 1월 18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둔 집회입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말했습니다.

“서부지방법원 주소를 한번 띄워 주세요. 우리는 빨리 그쪽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명적이 문자 그대로 날아간 장면입니다.

그날 그가 쓴 말이 국민 저항권이었고, 다음 날 새벽 법원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던 사람들이 외친 말도 국민 저항권이었습니다. 현장의 유튜버도, 그 교회 전도사도 같은 다섯 글자를 썼습니다.

각자 생각해서 나온 말이 아니라 받아 쓴 말입니다.

경찰은 법원에 난입한 ‘MZ 결사대’ 등의 배후를 전 목사로 보고 있습니다. 전 목사는 부인합니다. 첫 조사는 폭동 열 달 뒤였습니다.

망설인 사람이 먼저 정리됐습니다

연합뉴스가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 등 세 갤러리의 글 27만 4천여 건을 분석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체포된 1월 15일부터 사태 당일인 19일까지입니다.

기사의 이 문장이 이 꼭지의 핵심입니다.

“신중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프락치’로 몰아붙여 차단하며 ‘극단의 극단’으로 치닫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사흘 동안 벌어진 일의 첫 단계가 이겁니다. 상대 진영을 공격한 게 아니라, 같은 게시판에서 망설인 사람을 먼저 쳐냈습니다.

그 뒤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19일 새벽 1시 6분 폭력시위를 준비하자는 글이 270여 명의 추천을 받았고, 두 시간 뒤 유리창이 깨졌습니다.

후회한 사람이 배신자가 됐습니다

그날 법원에 들어간 사람 중에 서른여섯 살 손모 씨가 있었습니다. 1심에서 징역 4년 6개월을 받았습니다. 피고인 중 두 번째로 무거운 형량이었습니다.

손씨는 대법원에 탄원서를 냈습니다. 전적으로 제 잘못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요.

그리고 황교안 전 국무총리 측이 제안한 무료 변론을 거절했습니다. 피고인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전광훈 목사와 보수 유튜브 채널들이 보낸 영치금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사건 피고인들이 그를 배신자라 부르며 구치소에서 따돌렸습니다.

왜 따라 쏠까요

2,200년 전엔 따라서 쏘지 않으면 죽었기에 명적이 날아가면 무조건 따라서 쐈습니다.

오늘날 처형이 없는데도 따라 쏩니다.

그 이유를 설명한 연구가 있습니다.

앨리스 마윅(Alice E. Marwick)이 2021년 《Social Media + Society》에 발표한 도덕적 동기의 네트워크형 괴롭힘(morally motivated networked harassment) 모형입니다. 괴롭힘을 겪은 28명과 플랫폼의 신뢰·안전 담당자 9명을 인터뷰해 만들었습니다.

순서가 이렇습니다.

누군가 표적을 지목하면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저 사람이 훼손했다고 주장합니다. 영향력 있는 계정이 그 주장을 퍼뜨립니다. 같은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공격에 가담합니다.

이때 공격은 남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괴롭힘에 참여하는 행동 자체가 ‘나도 우리의 가치를 지킨다’는 표시가 됩니다. 충성의 증명이요.

마윅이 짚은 결과가 하나 더 있습니다. 괴롭힘은 자주 지목당한 사람의 자기검열로 이어지고, 그렇게 소셜 미디어의 발언을 규제한다는 겁니다.

즉 괴롭힘은 ‘입틀막’의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전현희가 받은 건 욕설입니다. 그 자리에서 다음에 입을 열 사람이 받은 건 경고고요.

왜 멈추지 않을까요

윌리엄 브레이디(William J. Brady)와 몰리 크로켓(Molly Crockett) 등이 2021년 《Science Advances》에 낸 연구가 이걸 측정했습니다.

트위터 사용자 7,331명이 쓴 트윗 1,270만 개를 분석했습니다.

전날 올린 분노 섞인 글이 좋아요와 공유를 많이 받을수록, 다음 날 분노 표현이 늘었습니다.

박수를 받으면 다시 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이미 분노가 흔한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일수록 그 박수에 덜 민감했습니다. 좋아요가 없어도 분노했다는 뜻입니다.

나중에는 벨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 이겁니다.

여쭙겠습니다

명적이 날아갈 때, 도덕적인 이유가 있다면 함께 쏘시겠습니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한 말이 상대를 설득하려던 말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말을 걸어본 적이 없는 겁니다.

설득해 본 적 없이 설득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처음부터 말 없이 행동한 것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실 수 있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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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써. 대신 이것만 확인해줘.

위의 글을 읽어 보고 쓰는 거야. 읽어봤지?

누군가를 말로 패주고 싶다면 잘못 왔어. 욕과 조롱은 금지. OK?

아, 그리고 유머감각을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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