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tive] 합법이면 끝? — 마크 터시넷의 ‘헌법적 하드볼’

“법에 안 된단 말이 없는데 왜 시비냐.”

이번 논쟁에서 가장 자주 나왔던 말입니다. 그리고 반박하기가 은근히 어렵습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이 금지하지 않은 걸 하겠다는데 뭐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22년 전 미국의 한 헌법학자가, 정확히 이 상황을 설명하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마크 터시넷, 그리고 ‘헌법적 하드볼’

하버드 로스쿨 교수 마크 터시넷(Mark Tushnet)이 2004년 논문에서 제시한 개념입니다. 헌법적 하드볼(Constitutional Hardball)의 정의란 이렇습니다.

기존 헌법 원리와 관행의 범위 안에 있다는 점은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기존의 ‘전(前)헌법적 이해’와는 긴장 관계에 있는 정치적 주장과 실천.

풀어쓰면, 합법이긴 한데 규범적으론 위반되는 것들입니다.

여기서 ‘전헌법적 이해’라는 말이 핵심인데, 터시넷은 이걸 이렇게 설명합니다.

헌정 체제가 작동하게 만드는 “말 안 해도 아는” 가정들. 이것들은 위기의 순간이 아니면 알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말할 필요가 없어서 아무도 안 적어둔 것. 그래서 법전에 없고, 그래서 “법에 없는데?”가 성립하는 겁니다. 정확히는 법이 허락했다기 보다, 법에 없는 것이죠.


터시넷은 하드볼이 발생하는 세 가지 조건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 기존 헌법 원리로 방어할 수 있다. 때로는 간신히.
둘. 확립된 전헌법적 이해와 어긋난다.
셋. 판돈이 극도로 크다. 구체적으로는 국가 정부 전체에 대한 통제권.

그리고 언제 벌어지느냐. 터시넷의 답은 이겁니다. 정치 행위자들이 헌정 질서를 영구히 바꿀 기회를 감지했을 때.


여기서부턴 퀘스천스의 가설입니다

터시넷의 논의는 미국 헌법에 관한 것이고, 이 개념을 한국의 국회법 문제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저자의 의도를 벗어납니다. 그러나 이 렌즈로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용 후보와 기본소득당은 처음엔 ‘합법적’이란 방어로 ‘하드볼’을 강행하려 했습니다. 이 사안을 터시넷이 말한 하드볼의 세 요건에 대보겠습니다.

요건 하나 — 합법하다는 원리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국회법 제29조는 의원의 장관 겸직을 금지 목록에서 빼두고 있습니다. 방어 가능합니다.
다만 터시넷이 붙인 단서를 보세요. “때로는 간신히.” 조문 제목은 ‘겸직 금지’이고, 헌법 제43조는 겸직 금지를 원칙으로 삼으며, 겸직하면 보수도 못 받습니다. 방어는 되는데, 편하게 되진 않습니다.

요건 둘 — 확립된 이전 규범과 어긋납니다.

무려 26년입니다. 2000년 김한길부터 2022년 이영까지, 여야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지켜졌습니다. 2015년 강은희는 깨보려다 여론에 밀려 꺾였고요.
그리고 이게 딱 터시넷이 말한 “말 안 해도 아는 것”입니다. 아무도 법으로 안 만들었어요.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요건 셋 — 판돈이 극도로 큰가요?

국회법이라는 렌즈로 맞춰 보면, 용 후보와 기본소득당 입장에선 판돈이 큽니다. 기본소득당에게 이 의석 하나는 원내정당이냐 원외정당이냐를 가릅니다. 국고보조금 수급 자격이 걸리고, 교섭단체는커녕 국회에 자리 자체가 사라집니다. 하늘과 땅 차이죠. 장관직 또한 큰 판돈입니다. 원내 1석 정당이 자기 의제를 정책으로 만들 통로는 사실상 없거든요. 장관직은 그게 처음 가능해지는 자리입니다.

기본소득당이 실제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아마 이걸 겁니다. 사실상 비례대표들이 장관직 임명 후 의원직을 사임해 온 관행은 지난 26년간 전부 거대정당 의원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잃을 게 없었죠. 소수정당에 처음 적용되자 문제가 된 겁니다. 지금까진 미덕이었지만 소수정당이란 변수가 더해졌을 때도 미덕일까요? 그럼 이건 규범의 수호입니까, 규범을 가장한 진입장벽입니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후폭풍입니다.
터시넷의 개념은 가진 쪽이 더 가지려 할 때의 하드볼인 반면, 기본소득당처럼 약자가 강행하는 하드볼의 후폭풍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약자가 강행하는 하드볼은 약자에게 되려 불리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1877년 영국 하원, 아일랜드 의원 일곱이 300명의 영국 의원들을 상대로 45시간을 버텼습니다. 규칙 위반은 아니었어요. 발언권을 끝까지 썼을 뿐이죠. 무시당하던 그들이 처음으로 세력이 됐습니다. 다만 자치는 못 얻었고, 하원은 그 방식을 못 쓰도록 규칙을 바꿨습니다. 규칙을 만드는 건 언제나 다수입니다.

아울러 이 문제는 이 판이 기본소득당과 용 후보에 국한된 판이 아니란 겁니다. 국민이 억지로 걸어야 할 판돈이 작지 않을 수 있죠. 이번에 통했다면 다음 사람도 썼을 겁니다. 그리고 다음 사람은 소수정당이 아닐 수 있어요. 거대정당 비례의원이 같은 논리를 들고 나올 때, 그때 판돈은 위험할 정도로 클 수 있습니다.

터시넷이 하드볼의 특징으로 꼽은 게 되갚기(tit-for-tat)입니다. 한쪽이 쓰면 상대도 쓰고, 그렇게 규범이 무너진다는 것.


그래서 “합법이면 끝”이라는 말에 대해 터시넷의 개념이 알려주는 건 이겁니다.

하드볼은 원래 합법입니다. 불법이면 그건 하드볼이 아니라 그냥 위법이죠. 합법이라는 건 이 논쟁의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그러니 “법에 안 된단 말이 없는데 왜 시비냐”는 말은 논쟁을 끝내는 게 아니라, 이제 진짜 질문이 시작된다는 신호입니다. 그 질문은 이거예요.

말 안 해도 아는 걸로 남겨둔 게 뭐였고, 그게 왜 필요했는가.


그리고 하드볼은 던져지지 않았습니다.

9월 13일, 용 후보자가 장관 후보직을 내려놨습니다. 지명 14일 만이었어요. 결정적이었던 건 민주당의 요청이었고, 이유는 “국민적 공감대 부족”이었습니다.

위법 판정이 난 게 아닙니다. 법 해석이 정리된 것도 아니고요. 여론이 정리했습니다.

터시넷 식으로 말하면, 말 안 해도 아는 것이 그대로 작동한 겁니다. 아무도 적어두지 않았는데, 결국 그게 이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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