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이 구습으로 질기게 남아 폐해가 된 사례들
법은 하루면 바뀝니다. 관행은 아닙니다.
용혜인 후보자 사안은 법과 관행이 정면으로 다퉜던 사례입니다. 법은 겸직해도 된다는데, 26년 된 관행은 안 된다고 했죠.
이럴 때 흔히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관행이 뭐라고.”
일리 있습니다. 관행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어떤 관행은 그냥 오래됐을 뿐이고, 어떤 관행은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굳은 것이고, 어떤 관행은 아예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정치사에도 그런 구습이 꽤 있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 법을 고쳐도 잘 안 없어졌다는 겁니다.
하나. 검사동일체 — 법전에서 지웠는데 16년 뒤에도 살아 있던 관행
제헌국회가 1949년 만든 검찰청법에 이런 조항이 있었습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
이름이 ‘검사동일체의 원칙’입니다. 전국 어느 검찰청에서든 같은 기준으로 검찰권을 행사하자는 취지였어요. 명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현실이었죠. 정치사건이 터질 때마다 검찰 고위층이 담당 검사에게 압력을 넣는 근거로 쓰였습니다.
2004년 1월, 노무현 정부가 이 조항을 고칩니다. “상사의 명령에 복종”이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로 바뀌었고, 조문 제목에서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이견이 있으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조항도 새로 생겼고요.

강금실 당시 법무장관은 검사의 직무상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법은 그렇게 하루 만에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이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검사 동일체의 원칙은 15년 전 법전에서 사라졌지만, 아직도 검찰 조직에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같은 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검사 전출식에서 검사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입각해 운영되는 조직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전에 없는 용어를 조직의 운영 원리로 쓴 겁니다.
법은 16년 전에 지웠는데, 관행은 그대로였습니다.
둘. 조서재판 — 일제 사법의 흔적이 2022년까지
한국 형사재판에는 오래된 관행이 있었습니다. 판사가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수사기록을 먼저 읽고 사건 개요를 파악하는 것.
언론은 이걸 일제 사법의 잔재라고 지적해왔습니다. 재판이 시작부터 유죄추정으로 기운다는 거죠.
근거는 형사소송법 제312조였습니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강한 증거능력을 주는 조항이요. 그래서 법정에서 다투기 전에 수사 단계에서 이미 승부가 났습니다. 판단의 중심이 법정이 아니라 조서에 있었던 겁니다.
이 조항이 바뀐 게 2020년 2월입니다. 그리고 실제 시행은 2022년 1월 1일이었어요. 이제 검사가 만든 조서도 경찰이 만든 조서와 똑같은 제한을 받습니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로 쓸 수 없고요.
1948년부터 2022년까지. 74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관행은 나쁜 걸까요.
위 두 사례는 관행이 얼마나 질긴지를 보여줍니다. 법을 고쳐도 안 없어졌으니까요.
그런데 용혜인 사안은 방향이 정반대였습니다.
여기선 법은 허용하지만 관행이 막았습니다.
그리고 26년간 아무도 안 그랬죠. 이번에도 안 그랬고요. 9월 13일, 용 후보자는 장관 후보직을 내려놨습니다.
여쭙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어렵습니까.
법이 금지했는데 사라지지 않는 관행입니까, 아니면 법이 허용하는데 아무도 안 하는 관행입니까.
그리고 — 후자를 깨는 건 구습 타파입니까, 아니면 그냥 약속을 어기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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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많은 걸 바꾸고도... 바꿨기에 욕 먹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