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잘못할 권리(Right To Do Wrong)’
잘못할 권리. 말 그대로입니다. 정치철학자 제러미 월드론(Jeremy Waldron)이 1981년 논문 「잘못할 권리(A Right to Do Wrong)」에서 본격적으로 세운 개념입니다.
처음 들으면 모순처럼 들립니다. 잘못이면 하면 안 되는 건데, 거기에 권리가 왜 붙습니까.
이 논의의 핵심은 어떤 선택을 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과 그 선택을 도덕적으로 옳다고 평가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누가 친구에게 아주 매정하게 말했다고 해봅시다. 우리는 그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그 사람을 처벌해야 하는 건 아니죠.
돈이 많은데 평생 한 푼도 기부하지 않는 사람도 비난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가 그 사람 지갑을 열어 기부하게 만들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간단히 줄이면 이렇습니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 그래도 그 선택을 할 자리는 그 사람에게 남겨둔다.
이게 잘못할 권리입니다.

옳은 선택만 할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월드론이 이걸 중요하게 본 이유는 자유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옳은 선택만 할 자유를 준다고 해봅시다. 그건 자유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답이 하나면 고를 게 없으니까요.
무슨 책을 읽을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좋은 책만 선택하도록 강제하고, 누구와 결혼할지 자유롭다고 하면서 올바른 배우자만 고르도록 강제한다면, 그것을 완전한 자기결정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자유에는 원래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들어 있습니다. 실수할 가능성, 남이 싫어할 선택을 할 가능성까지요.
틀렸으니 막아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누군가의 언행이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거짓말과 왜곡, 잔인한 표현으로 점철된 말을 반복하고 있다고 칩시다.
우린 틀린 주장에 반박하고, 왜곡을 비판하고, 잔인한 표현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표현을 다른 사람이 접하지 못하도록 막을 권한까지 생기는가.
잘못할 권리가 묻고 있는 핵심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주변인의 태도. 옆에 선 사람의 의무.
어떤 영화가 역사적으로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의 발언이 무책임하고 불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둘 다 충분히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질문은 별개입니다.
틀렸으니 아예 말하지 못하게 하거나, 남이 보지 못하게 해야 하는가.
잘못할 권리를 인정하는 사회를 원하십니까, 용납하지 않는 사회를 원하십니까.
위아래 붙은 목록이 그거야!
표현의 자유는 비판으로부터의 면책이 아닙니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표현이 옳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틀린 표현, 불쾌한 표현,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표현에 대한 면책도 아닙니다.
그런 표현들은 비난받고 조롱받고, 심하면 법적 책임도 지게 됩니다. 명예훼손과 협박은 실제로 죄가 됩니다. 선을 넘으면 그렇습니다.
월드론 본인도 어디까지인지를 따집니다. 그는 2009년 올리버 웬들 홈스(Oliver Wendell Holmes) 강연을 토대로 2012년 『혐오표현의 해악(The Harm in Hate Speech)』을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냈습니다. 혐오표현 규제를 논하는 책이고요.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그가 나눈 기준은 이렇습니다.
논쟁적인 묘사로 불쾌감을 주는 것과, 어떤 집단의 존엄을 겨냥한 명예훼손적 공격은 같지 않다.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수정헌법 제1조로 가장 강력하게 보장되는 권리입니다. 그래도 면책은 아닙니다.
2012년 미국 코네티컷주 샌디훅(Sandy Hook) 초등학교에서 총기 참사로 26명이 숨졌습니다. 어린이가 20명이었습니다.
알렉스 존스(Alex Jones)는 그 참사가 조작됐고 유가족이 배우라고 수년간 반복해 주장했습니다. 유가족과 당시 출동했던 연방수사국 요원이 소송을 냈습니다.
2022년 배심은 손해배상 9억 6,400만 달러를 인정했고, 판사가 징벌적 배상 4억 7,300만 달러를 더했습니다. 합쳐 약 14억 달러입니다.
존스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상고했습니다. 2025년 10월 14일, 연방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한 사회가 누릴 수 있는 자유주의는 그 사회가 가진 ‘견디는 힘’에 비례합니다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자유론(On Liberty)』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인류가 한 의견이고 단 한 사람만 반대 의견이라 해도, 인류에게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킬 권리는 없다.”
1906년 영국의 작가 이블린 비어트리스 홀(Evelyn Beatrice Hall)은 『볼테르의 친구들(The Friends of Voltaire)』에서 볼테르의 태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권리는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
사회가 다른 의견을 견디는 힘을 갖고 있지 않으면 잘못할 권리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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