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덕이던 관행을 깨뜨려 정치를 퇴보시킨 사례들

깨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

앞 글에서는 관행이 얼마나 질긴지를 봤습니다. 법을 고쳐도 안 없어지더라고요.

이번엔 반대입니다. 관행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고, 그 대가는 나중에 옵니다. 그리고 대개 깬 사람이 아니라 다음 사람이 치릅니다.


하나. 150년짜리 관행과 11년 뒤의 헌법

조지 워싱턴은 1796년 3선에 출마하지 않고 물러났습니다. 헌법에 임기 제한 조항은 없었어요. 그냥 물러난 겁니다.

왜 그게 중요했냐면 — 당시 세계에 선출된 지도자가 스스로 물러난 전례가 거의 없었습니다. 왕이 아닌 사람이 권력을 잡았다가 때가 되면 내려놓는다는 것. 그게 공화국이 왕정과 다르다는 유일한 증명이었어요. 워싱턴은 그걸 보여준 겁니다.

그리고 150년간 아무도 안 깼습니다. 1880년 그랜트가,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어요. 깨려는 사람은 있었는데 국민이 막았습니다.

그런데 1940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3선에 출마합니다. 전시였고, 대공황에서 회복 중이었고, 무엇보다 불법이 아니었어요.

이겼습니다. 1944년 4선에도 성공했고요.

그래서 뭐가 문제였냐면.

루스벨트가 세상을 떠난 건 1945년 4월입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1개월. 그동안 대법관 아홉 명 중 여덟 명을 그가 임명했습니다. 연방정부 기구 대부분이 그의 임기 중에 만들어졌고, 그 자리를 채운 사람도 그가 골랐어요.

그러니까 한 사람이 국가의 인적 구성 전체를 갈아치울 시간을 가졌던 겁니다. 합법적으로요.

그리고 당시 유럽을 보세요.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선거로 집권한 뒤 합법적 절차를 밟아 권력을 영구화했습니다. 미국인들은 그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루스벨트가 독재자였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대공황과 전쟁을 이끈 지도자로 지금도 높이 평가받죠.

문제는 이겁니다. 좋은 사람이 오래 있어도 괜찮다면, 나쁜 사람이 오래 있는 것도 막을 수 없다. 관행이 사라진 자리엔 사람의 자질밖에 안 남거든요.

1951년, 미국은 수정헌법 22조를 비준합니다. 누구도 대통령직에 두 번을 초과해 선출될 수 없다는 조항이었어요.

150년간 아무도 이걸 법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한 번 깨지자 11년 만에 헌법에 새겼습니다.

관행은 지켜지는 동안엔 법이 필요 없어 보이고, 깨지고 나면 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둘. “당신들은 후회할 겁니다”

미국 상원엔 필리버스터라는 게 있습니다. 소수당이 표결을 막을 수 있는 장치예요.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를 인준하려면 100명 중 60명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왜 60이었냐면 — 다수당이 51석이면 51석으로 다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 소수당은 있으나 마나죠. 60을 요구하면 다수당 혼자서는 절대 안 되고, 반드시 상대편 몇 명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판사 후보를 고를 때 자기편만 좋아할 사람을 못 냅니다. 상대편도 최소한 못 받아들일 정도는 아닌 사람을 골라야 했어요. 60이라는 숫자가 중도 성향 법관을 만들어낸 겁니다.

특히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입니다. 한 번 앉으면 20~30년을 갑니다.

2013년 11월, 민주당 해리 리드 원내대표가 이 규칙을 바꿉니다. 공화당의 전례 없는 인준 방해를 이유로, 판사 인준 기준을 60에서 과반으로 낮췄어요. 다만 대법관은 예외로 남겼습니다.

그때 소수당이던 공화당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가 이렇게 말합니다.

“후회하게 될 겁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4년 뒤, 정확히 그렇게 됐습니다.

2017년 4월, 이번엔 공화당이 다수당이었습니다. 매코널은 리드가 만든 그 전례를 대법관에게까지 확장했어요. 다음 날 닐 고서치가 과반으로 인준됐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중 대법관 세 명을 임명합니다. 전부 60표가 필요 없는 상태에서요. 대법원 구성은 이후 수십 년간 그 영향을 받게 됐습니다.

2013년에 그 표결에 찬성했던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는 2017년에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민주당 의원은 “상원에서 한 투표 중 최악의 투표”였다고 했고요.

관행을 깬 쪽은 민주당이었고, 열매를 가져간 건 공화당이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건 의석이 아닙니다. 상대편을 설득해야만 판사를 앉힐 수 있던 구조가 사라진 거예요. 이제 양쪽 다 자기편만 앉힙니다. 그게 대법원이 지금처럼 갈라진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두 사례의 공통점

첫째, 깬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루스벨트는 전시였고, 리드는 실제로 인준 방해에 시달렸어요. 악의로 깬 게 아닙니다.

둘째, 깰 때는 합법이었습니다. 둘 다 법을 어긴 게 아니에요. 안 하던 걸 했을 뿐이죠.

셋째, 한 번 가능해지면 다음 사람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관행은 지켜야 할까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앞 글에서 봤듯 어떤 관행은 없어져야 마땅하죠. 검사동일체도, 조서재판도 사라지는 게 나았습니다.

다만 이 두 사례가 알려주는 게 하나 있습니다.

관행이 지켜지는 동안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 수 없다는 것. 워싱턴의 자제가 사실은 시스템이었다는 걸 미국은 1940년에야 알았습니다. 그 전까진 그냥 매너인 줄 알았죠. 이번에도 관행이 깨질 뻔했다가 지켜졌습니다. 그런데 지켜준 건 법이 아니라 여론이었죠.


여쭙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관행 중에, 깨지고 나서야 중요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하나 더. 관행을 깨는 사람이 그 이득을 보는 경우와, 손해를 보는 경우 — 우리는 이 둘을 다르게 대해야 할까요?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 첫 번째가 되어줄래?

같은 이슈의 다른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