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에서 비례대표까지의 역사
① 전국구는 1963년 박정희 정권이 도입했고, 처음부터 거대 정당에 유리하게 설계됐다
비례대표의 전신인 전국구 제도는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처음 도입됐다. 명분은 미국식 양당제 유도였다.
전체 의석의 4분의 1을 전국구로 선출했고, 지역구 선거에서의 정당 간 득표 비율을 배정 기준으로 삼았다. 다만 실제로 득표 비율대로 배분받는 것은 봉쇄조항을 넘은 제3당 이하였고, 제1당에는 전국구 의석의 최소 2분의 1, 제2당에는 최소 3분의 1이 보장됐다.
결과는 득표와 크게 어긋났다. 제6대 총선에서 제1·2당의 득표율은 제3당의 각각 2.5배와 1.5배 수준이었으나, 배분받은 전국구 의석은 4.4배와 2.8배였다.
② 전국구는 1973년 총선부터 사라졌다가 1981년 부활했다
유신헌법 시행 이후 치러진 1973년 제9대와 1978년 제10대 총선에서는 전국구 제도가 폐지됐다. 대신 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간선으로 선출했다.
전국구는 1981년 제11대 총선에서 부활했다. 지역구 의석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92석이 전국구로 배정됐다.
③ 1981년 부활한 전국구는 득표율이 아니라 ‘지역구 의석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부활한 제도는 도입 당시와 배분 기준이 달랐다. 득표율이 아니라 지역구 의석수를 기준으로 삼았고, 지역구 의석 1위 정당에 전국구 의석의 3분의 2를 배분한 뒤 제2당부터 잔여 의석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이 구조는 제12대 총선까지 이어졌다.
법학계에서는 이 방식이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소선거구제는 제1당에 유리하게 작용하는데, 그 결과인 의석수에 비례해 전국구를 배분하면 소선거구제의 문제를 시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제1당에 추가 프리미엄까지 부여해 득표수와 의석수의 괴리를 더 키운다는 지적이다.
④ 유권자가 정당에 직접 투표하게 된 것은 2004년부터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의석 배분 방식과 의석수에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다. 2000년 제16대 총선부터는 명칭이 ‘전국구’에서 ‘비례대표’로 바뀌었다.
그러나 투표 방식 자체는 1963년부터 2000년까지 동일했다.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 개인에게만 투표했고, 그 득표 결과를 바탕으로 비례 의석이 배분됐다. 정당에 직접 투표하는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분리해 투표하는 1인 2표제는 2004년 제17대 총선부터 시행됐다.
⑤ 제도의 목적이 ‘집권당 의석 확대’에서 ‘소수 대표’로 바뀌었다
제도의 형식이 바뀌면서 취지도 달라졌다. 집권당 의석 확대 수단이었던 전국구는, 여성·장애인·청년·소수정당 등 지역구 선거에서 불리한 집단의 국회 진출을 돕는 장치로 성격이 변화했다.
이 변화는 비례 의석의 성격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역구 의원이 특정 지역 유권자에게 개인으로서 선택받는 것과 달리, 비례대표는 정당에 대한 지지로 배분된 의석이라는 점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⑥ 취지의 변화가 ‘입각 시 비례대표 사퇴’ 관례를 낳았다
비례 의석이 개인이 아닌 정당에 배정된 몫이라는 인식은, 비례대표 의원이 장관으로 입각할 경우 의원직을 사퇴하는 관례의 배경이 됐다.
비례대표 의원이 사퇴하면 명부의 차순위 후보자가 의석을 승계하므로 의석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다. 지역구 의원이 사퇴할 경우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한 사람이 더 의정 활동을 할 기회를 얻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 관례는 2000년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이 임명 직후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시작됐다.
⑦ 준연동형과 위성정당은 이 관례의 전제를 흔들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자, 거대 정당들은 비례 의석 확보를 위해 별도의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소수정당들은 독자 출마 대신 위성정당 명부에 후보를 올리는 방식으로 원내에 진출했고, 당선 이후 제명 절차를 거쳐 원래 정당으로 복귀했다.
이 구조에서는 비례대표 의원이 사퇴하더라도, 그가 현재 소속된 정당의 차순위가 아니라 당선 당시 명부를 제출한 위성정당의 차순위가 의석을 승계한다.
‘정당에 배정된 몫이므로 정당에 돌려준다’는 관례의 전제가, 돌려줄 정당이 달라지면서 성립하지 않게 된 것이다.